온 유안
Ohn Yu Ann / 溫柔安
이상한 나라의 해결사
대한민국 / 19/ 시스젠더 남성
177cm 63kg
4월 5일 / Rh+A형
소지품
스마트폰
데이터 사용이 일절 되지 않는 스마트폰이다.
(불편하긴 한데 WIFI도 안 되는 폰 쓰는 애들도 있어서)
잠금화면도, 폰 배경화면도 기본이라
아저씨냐는 말을 좀 들었다.
핸드폰 안에는 기본 앱 말고도 공부 관련 앱들이 몇 몇 보인다. 게임은 2048, 테트리스, 스도쿠가 깔려있다.
갤러리엔 귀여운 고양이나 강아지 사진들이 잔뜩...
... 가끔씩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몇 개 보인다.
이어폰
흰색의 평범한 이어폰.
초대장
성격
[ 츤데레 / 정 많은 / 무른 / 감성적인 ]
"너 신경써서 그러는 거 아니거든?"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더는 안 도와줘."
"전에 마지막이랬잖아. ... ... ...아 진짜! 알겠어 도와준다고!"
"... ...(야 우냐? 온유안 울어? 야 얘 운다~) 아 뭐래 안 울거든... 하 진짜...
(유안아 많이 슬펐어? 그랬어?) 안 운다고."
그는 태생부터가 안온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감정도 풍부해서 쉽게 타인에게 공감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쉽게 울고 같이 화내고 함께 기뻐했다.
슬프고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면 금방 붉은 눈가가 되고,
불의를 들으면 자신의 일인 마냥 같이 화냈다.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정을 가졌고,
누구 하나를 온전히 증오하는 것엔 서툴렀다.
사람은 미련한 생물이랬던가, 말투는 이 세상 자신의 것인 마냥 딱딱하고 거친 편이면서
끝내는 남을 돕고 마는 미련함도 가지고 있었다.
항상 이번이 마지막이야, 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 그 말은 한 번도 실현되지 못했다.
처음엔 딱 잘라 거절하는 듯 해도 조금만 울듯이 조르면 결국 제 뜻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언뜻 들으면 호구같기도 한데, 다행히 상대가 악의를 가지고 이용하려는 것과
진심으로 도움을 요하는 경우는 구분할 줄 알았다.
물론 전자의 경우에는 꺼지라고 욕한다.
온유안? 아 걔요?
걔 진짜 츤데레잖아요 맨날 애들 도와주고 심지어 모르는 애도 도와줘요
(친화력은 좋은 편 아니면서 그런 데에선 먼저 다가가는 거 신기하다니까)
아 저 걔 중딩 때부터 봤는데 진심 착해요 걔 다정한 거 모르는 애들 없음
(그리고 다 츤데레라고 놀리고) 근데 맨날 틱틱대요 귀여운 자식...
[안전 불감증 / 무감한 / 익숙한/ 체념]
"아니... 뭐 이런 것 가지고?"
"다들 똑같이 힘들지 뭐,"
"이때까지 계속 이랬는데?"
"어차피 안 바뀌어."
그는 제 안전에 이상하리만큼 무신경했다. 감기에 걸려도 학원은 갔다.
아무리 아파도 열이 안 나면 그냥 버텼다. 웬만한 '자신의 아픔'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런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겐 오히려 당연했다. 설마 정말 이러겠어, 의 안일한 생각들.
하지만 이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또한 쉽게 포기하고, 쉽게 순응했다.
어차피 내가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하든 내가 가진 권리는 지극히도 작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저 기계적으로 제 생활을 할 뿐이었다. 희망을 갖고 미래를 살기보다는
아무 감정 없이 현실을 살아갔다. 그럼에도 본인에게 문제를 잘 못 느꼈다.
기타사항
4월 5일, 무화과, 풍요로운 결실. RH+A
염색 하나 하지 않은 새까만 흑발에 태생적인 곱슬머리.
머리카락이 얇아서 바람에 잘 휘날린다.
눈은 완연한 갈색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재학 중에 파마랑 컬러 렌즈 아니냐고 선도부에 잡힌 적이 꽤 있다.
(저 이거 생머리카락 그대로에 생 눈알인데요?)
부모님과의 통화로 풀려났었다.
딱 보아도 확실히 올라간 눈매에 날카로운 고양이상,
거기다가 웃는 일보다 팍 인상 쓰는 일이 더 잦으니 선생이고 친구고 할 것 없이 첫 인상은
성질 더러운 양아치였다. (...)
현재 고등학교 재학 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평범하게 잘 졸업해왔다.
의외로 사고 하나 치지 않은 모범생에 대인관계도 매우 완만하다.
이 친구 저 친구 다 친한 건 아니지만, 특유의 성정 덕분에 적어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학교가 갈라진 친구와도 아직 연락하고 있을 정도로.
단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친구들도 여러 명이었고, 그의 친구들은 그를 좋아했다.
어느 다른 고등학생과 다름없었다.
서울 강남에 있는 부유하고 교육열 높은 동네에서 살며,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역시 흔히 말하는 특목고, 과학고등학교이다.
서울에 있는 의대 지망.
"부모님? 바쁘셔."
"형은... ... 다른 의미로 바빠. 되게 살 맛 난 것 같던데. 부러워."
가족 관계는 아버지, 어머니, 위로 대학생 형 하나.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잘 나가는 대기업의 높은 위치에 근무하고 있어서 집안은 부유했고,
그만큼 부모는 바빴다. 거의 아침에 한 번 늦은 밤에 한 번씩 보는 편.
위의 형은 수능을 마친 지 1년여가 지난 대학생으로, 현재 약대에 재학 중.
형 역시도 같은 과학고등학교를 다니고 의대를 지망했었지만 수능 성적에 맞춰 진로를 바꾼 케이스다.
그럼에도 큰 미련 없이 현재 대학에 만족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흔치 않은 긍정맨으로,
독립해서 따로 산 지 몇 달이 되어서 자주는 못 봤다고.
하지만 형과는 꾸준히 연락 중이며 가끔 용돈도 쥐어줄 정도로 제법 우애있는 형제 사이다.
놀랍게도 전교 1등을 대부분 잡을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
모든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탓에 0.n이 깎이는 것 하나로 등급이 갈리는 수준인데도,
딱 1번을 제외하고 줄곧 전교 1등에 평균 1.0등급을 유지 중이다.
본래 타고난 머리도 있었겠지만, 본인이 말하기에는 노력이라고 한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닐걸요
노력하는 건 맞는데 솔직히 특목고 다니는 애들 다 그쯤 노력하잖아요
온유안 걔가 특히 머리 좋은 거죠 진짜 부럽다
06:30 기상 및 아침식사
07:00 등교 준비
07:10 등교
07:25 학교 도착
08:00 학교 수업
17:10 석식
18:30 학원
22:40 과외
00:00 학교 수행 과제 및 숙제
01:30 자습
02:30 취침
"안 힘든 건 아닌데 주변 애들 다 이쯤은 해서... 하기 싫다고 안 할 수도 없고 뭐 별 수 있나,
수능 빨리 끝내야지. 그리고 어차피 학교에서 많이 자."
완전히 쉬는 날 하나 없이 모든 요일에 빽빽한 학원 스케줄에 자습까지,
하루 중 20시간을 깨어있는 꼴. 물론 매일 정확히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틀이나 마찬가지였다.
"취미? 단어 외우기? 아니 근데 이런 것밖에 또 있나.
평소엔 시간 없고 기껏해야 중간 기말 끝나고 잠깐 피시방 가서 놀고 그런 정돈데.
...아, 그것도 이제 고3이니까 못 하겠다.
음... 아, 테트리스. 2048. 스도쿠. ...아 왜! 재밌는데 뭐!"
"특기... ... ... 교과 세특 쓰기?
나름 무에서 유 창조 가능하다고 생각해.
한국 고딩 기본 소양 아니냐? 자소설 지어내기. "
"음료수... 싫어하는 건 아닌데? 이왕이면 카페인 든 거.
탄산도 좋긴 한데 수업 들으려면 커피 우유 때려박아야 해서.
뭐 거기다가 달달하고... 맛있고... (그런 걸 좋아한다고 하는 거 아냐?) 아 아니거든."
"아 버섯 개싫어 진짜... 흉측한 거 치워..."
"내 꿈? 의사. 탈한국. 독립. 완벽하지."
"그래, 솔직히 말해서 부모님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 그렇다고 싫어한다고 어떻게 말하냐. 낳아주신 분들인데. 패륜아라면서 욕 먹어."
그는 부모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싫어했지만.
부모를 싫어한다고 말하기엔 이유 모를 죄책감이 들어서 차마 싫어한다고는 하지 못했다.
위선이나 다름없었다.
높은 성적 강요와 부담,
그 정도 공부로 될지 모르겠구나. 이번에도 1등 해야 하지 않겠니? 예전에 한 번 떨어졌었잖아.
비교,
엄마 친구 아들 기억해? 왜 초등학생 때에 봤던 민수 있잖아.
걘 과외를 주말에 3개씩이나 한댄다. 너도 하나 더 할래?
틈만 나면 꺼내는 공부 얘기,
슬슬 모의고사 준비해야 하지 않니? 작년 국어 모의고사는 풀었어?
형의 수능 얘기를 들먹이며 너는 그러면 안 된다는 말들.
너희 형처럼 막상 수능에서 몇 문제 까여서 의대 놓치지 말고.
지겨울 지경이었다.
부모자식 간에 사적인 얘기 하나 없이 오로지 공부 얘기만이 오갔고,
그러니 당연히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또 똑같은 얘기를 할 테니까.
거기다가 지금 다니는 학원과 과외도 전부 부모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다니고 있었다.
하나라도 빠지면 금방 용돈과 휴대폰 압수를 운운하는데 어떻게 반항할 수가 있을까.
한창 사춘기를 달리던 중학생 때 며칠 학원을 통째로 빼먹었다가 집에서 잠깐 쫓겨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흔한 일이었다. 흔한 일에 흔한 고통이었고,
선생님에게 상담을 청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다른 애들도 그렇다며 일축되었다.
그리고 그 점은 그 역시도, 알고 있었고 동의했기 때문에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비뚤어져봤자 더 귀찮아질 뿐이라, 그냥 체념하기로 했다.
소꿉친구가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긴 시간을 함께 공유해온,
그야말로 특별한 친구.
같이 공부도 하고, 짬을 내서 게임 한 판도 같이 했으며, 같이 맛있는 걸 나눠 먹기도 했다.
즐거웠던 것도, 힘들었던 것도 공유하며 자라온 깊은 인연.
중학교 3학년 겨울에만 해도 같은 고등학교를 합격했다는 사실에 기뻐했던 게 아직도 눈에 선했다.
문제는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면서였다.
중학교보다 더 치열한 경쟁과 힘든 일정에 친구는 적응하지 못했었다. 유독 버거워했고,
이는 곧 계속되는 시험 성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부유하고 교육열 높은 동네가 다 그렇듯,
그의 친구의 부모 역시도 그의 부모와 비슷했다.
낮은 성적에 야단치고, 화내고, 빼앗고, 비교하고.
종종 자괴감과 우울로 괴로워하는 친구를 그는 이해할 수 있었기에,
자주 붙잡고 위로해주었으나 그의 친구는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다.
1학년 기말고사가 끝난 주의 주말, 그의 친구는 그에게 자신은 내일 자살할 것이라 말했다.
미안해. 많이 고민해봤어. 근데... 너무 힘들더라. 성적 하나가 뭐라고... ... 그래도 네가 있어서,
어떻게든 버텼는데... ...못하겠더라. 너한텐 고맙고.... 미안해.
그러고는 딱 하루만, 오늘만 같이 놀고 자신이 말한 건 모른 척 해달라며 부탁해왔다.
그는 처음에 무슨 소리냐고 화를 냈다가, 진심이냐고 다시 물었고,
정말 미안한데 딱 한 번만 더 생각해줄 순 없냐고 부탁했고, 네 말을 들어주지 않겠다며 거절했다가,
끝내 조금 울면서 친구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사실 처음부터 거절할 수 없던 부탁이었다.
그는 제 친구의 고통을 함께 겪어온, 겪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 아픔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차마 말리기엔 현실이 힘들었다.
하루종일 친구와 함께 논 건 처음이었다. 핸드폰도 잠시 꺼놓고, 밤까지 재밌게 놀았다.
그의 친구는 그 날 1년 중 가장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음 날 친구의 사망 소식이 문자 메세지로 날아왔다. 친구가 말한 날, 말한 시각, 말한 장소였다.
학교에서는 이 일을 그냥 묻으려 했고, 덕분에 재학생들 이상으로 퍼지지 않았다.
애초에 대한민국에서는 드문 일도 아니었다.
그는 제 친구의 죽음을 억지로 막을 수도 있었지만,
제 친구의 선택을 이해해버려서 결국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선 후회했다.
시간을 다시 되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했겠지만서도. 친구가 그 상태까지 된 것에 죄책감을 가졌고
친구의 선택을 침묵한 것에 괴로워 했다.
그렇게 마냥 텅 빈 듯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던 그는 소식을 들은 다른 친구들의 위로로 다시 일어섰다.
오로지 친구들의 덕이었다. 거기다 시간이 지나면서, 방학이 되고.
더 바빠지자 점점 친구의 부재에 적응할 수 있었다.
물론 그는 여전히 제 소꿉친구의 죽음을 잊지 못했다. 여전히 그 일에 잠길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